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사망자가 5천명이 넘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지난 달에 내린 비로 역대 최대의 홍수가 나서 국토 3분의 1이 잠기고,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에는 캐나다 남서부의 외곽 마을에서 두명의 범인들이 흉기로 무차별 공격을 해서 10명이 숨졌다고 합니다. 호주에서도 화재로 죽은 일가족 소식이 들리고, 교통사고와 범죄 사고들은 끝없는 뉴스 거리로 등장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좋은 소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의 좋은 소식들은 상대적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아들이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그 누군가에게는 슬픈 소식입니다. 사업에 성공해서 큰 돈을 벌어서 기쁠수 있지만, 경쟁 사업체는 고객을 빼앗기고는 슬픈 소식이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좋은 소식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소식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바울이 소개한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입니다. 영어로 ‘Good News’ 또는 ‘Good Message’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죄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소식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굿 뉴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하여 1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2).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구약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리새파의 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 예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 바울은 본문 3절과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1:3-4). 이 말씀은 해석상 논쟁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제가 쓴 책 이야기 로마서의 각주에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신분이요, 동시에 그분은 본래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1:5). 여기서 바울은 ‘믿고 순종하게 한다’는 표현을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정한 믿음은 순종이 따르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한마디로, ‘열매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서 2장을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요 죽은 믿음이다’라고 야고보가 말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고, 진정한 믿음은 순종의 행위를 동반합니다. 이 로마서는 바울이 당시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라는 편지의 인사말에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1). 헬라어 원문을 보면, 로마서 1장 1절부터 7절 까지의 내용은 하나의 긴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도 아니고, 바울이 이전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도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로마의 도시에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는 긴 안부의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선택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가두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회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울이라고 부르는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행 9: 15).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동시에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부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동시에 ‘종’은 ‘노예’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당시 로마사회의 4명중에 1명이 노예였고, 그들은 자유가 없었고 권리 주장도 할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말한 것은 스스로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5장 16절 이하를 보면, 종에 대한 율법규정이 나옵니다 .거기보면, 같은 이스라엘 동족이 종이 되었을때 7년째 되는 해에는 무조건 자유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해서 끝까지 종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 종을 주인의 대문으로 데려가서 그의 귀를 문에 대고 귀를 뚫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귀뚫은 종은 자유가 주어졌어도 스스로 종이 된 사람입니다 (신명기 15:12~18). 그와같이 아무 공로없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경험한 신자들은 지금도 그렇게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더나아가서, 바울은 주인의 뜻과 주인의 소유를 강조하는 의미로 모든 성도들을 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6절에 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것”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1:6)." 6절을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런 의미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여, 당신들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들의 주인이십니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도라고 불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종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6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기서 ‘값으로 샀다’는 말은 죄의 노예 아래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았다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7-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7-7). 바울은 로마서 1장 6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로마서 14장에 오면, ‘우리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인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종의 사명이요 종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일뿐 아니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자기 정체성입니다.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자들에게는 그 영원한 나라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광스럽고 복된 복음의 소식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7절에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 는 축복의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표현입니다. ‘평강’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적어인 표현이고 상당히 폭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은혜’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본으로 하고, ‘평강’은 그 구원의 결과 우리가 누리는 영혼의 참 평화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은혜와 평강은 삶속에서 경험하게 하고 누리는 측면도 포함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차원에서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하여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때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삶속에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부언 (P.S): 매주 설교 녹음 파일은 교회 카톡에 올리고 있습니다. 파일의 용량 초과로 인하여 이곳에 파일 업로드가 안되고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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